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막스 플랑크 (문단 편집) === 불우한 개인사 === 학자로서의 화려한 업적과는 대조적으로, 개인으로서는 매우 불행한 일들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의 아내인 마리 메르크와는 22년 만에 사별하고(그나마 재혼은 했다. 24살 연하하고), 첫째 아들은 제1차 세계 대전 때 전사하며, 두 딸들은 모두 출산 중에 사망한다. 그 뒤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이번에는 그의 둘째 아들 에르빈이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었다.''' 막스 플랑크는 그 소식을 듣고 히틀러에게 자신의 지위를 빌어 아들을 용서해달라고 청원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에르빈은 결국 1945년 1월 23일 처형되고 만다. 그리고 주변의 물리학자들은 핍박과 전쟁을 피해 모두 떠나갔으며 베를린에 있는 자신의 집은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어 자신의 각종 물리학 실험 데이터들과 재산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고 재혼한 부인도 막스 플랑크가 죽은지 1년후에 죽었고, 재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도 1954년 43세로 사망했다. 이러한 불행들 때문에 어찌나 힘들었는지, 플랑크는 말년에 "죽음만이 구원이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